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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고성) - 2001.02.25-28 본문

산행기-백두,금강/금강산

금강산 (고성) - 2001.02.25-28

삼포친구 2006. 2. 1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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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


(해금강)


(삼일포)


(얼어붙은 비봉폭포)


(구연계곡)


(온정각)

꿈에 그리던 금강산에...(2001.2.25)

그동안 회사의 내외적인 문제로 결혼 5주년 기념 결혼연수가 결혼후 8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왔다.
올해는 회사가 민영화 된다는 말도 있고 해서 나왔을 때 찾아 먹기로 하고 내친 김에 여기 저기 고민을 하다가 금강산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그동안 어머님께 못다한 효도도 할겸해서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45만원에 약 4배의 예산을 잡아서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출발 (2월25일):

2월 25일 2시에 출국수속을 밟고 동해항에서 봉래호에 올랐다.
남측에서 북측으로 가는 것은 국가간의 이동이라 해외여행을 하는 것과 동일한 형식의 출국수속을 밟아야 했다.
출항하기 전에 선상에서 교육을 받고 그럭저럭 배는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도상으로 가까운 거리지만 시속 10km의 속도로 가려니 꼬박 12시간이 걸려서 26일 아침 6시가 되어서야 북측의 장전항에 입항하였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북한땅이라 사진촬영도 함부로 안되고 통신은 완전히 두절된 상태라고 하였다.
이제서야 북한땅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첫날 (2월26일) : 해금강, 삼일포, 모란봉교예단

7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오늘 일정을 위해 북측세관의 입국수속을 밟았다.
처음 가까이서 직접 대하는 북한 사람들이라 긴장도 되었다.
다행히 날씨도 아주 좋았다.
무사히 입국수속을 마치고 양쪽에 철책선이 쳐진 금강산관광 전용도로를 따라 오전에는 해금강과 삼일포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도중에 처음으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북한군을 가까이서 보았으며, 아침에 어디론가 바쁘게 이동하는 북측 주민들도 볼 수 있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마을 경치도 그렇고 주민들 옷차림도 그렇고 우리네 70년대 새마을운동 이전의 풍경과 유사하였다.
우리가 손을 흔들어 주면 북측 군인들과는 달리 주민들은 답례를 해 주었다.
관광버스가 마을에 아주 가까이 지나는 곳이 있어 북한 주민들의 가옥과 가옥내부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대나무로 엮어서 만든 울타리, 마당에서 뛰어노는 개, 마당 한쪽 옆의 돼지우리처럼 보이는 볏짚으로 엮은 건물하며 모두가 내가 어렸을 때 고향집의 풍경이었다.
이대로 통일이 된다면 정말이지 우리가 2~30년동안 경제개발을 위해 쏟아 부었던 돈이 들어가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통일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해금강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바닷물과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바위절벽이 매우 아름다웠다.
여기 저기서 사진 촬영도 하였으나 제한구역이 많아서 아쉬웠다.
해금강 관광이 끝나고 바로 삼일포로 이동하였다.
금강산에 가기 전에 눈이 많아 와서 걱정이었는데 금강산 부근에는 눈이 더 많이 와 있었다.
삼일포에 도착하여 도보로 이동하는 길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아이젠이 없었다면 어머님은 무척 고생하실뻔 하였다.
삼일포 호수에 얼음이 얼고 그 위에 눈이 쌓여 있어서 한 여름의 호수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나름대로 설경이 절경이었다.
삼일포 관광을 마치고 온정각에 도착하였다.
온정각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하였다.
평양교예단의 그 유명한 공중곡예, 공중널뛰기, 공받기, 아크로바트 등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입장료가 1인당 30달러씩이나 하였으나 공연이 끝난후에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봉래호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북측 세관을 거쳐야 했다.
저녁식사후에는 봉래호에서 공연이 있었다.
간단한 쇼와 코미디등이 이어졌고, 그후에는 나이트클럽으로 바뀌었다.
어머님과 아내는 관광보다도 봉래호에서의 저녁일정에 더 관심이 있는 듯 하였다.
칵테일을 한 두잔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의 관광을 기대하였다.

둘째날 (2월 27일) : 구연폭포, 온천욕

유람선의 아침방송을 듣고 일어났다.
7시 50분까지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에 바로 북측세관을 거쳐 입북하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날씨가 아주 좋았다.
오늘 일정은 금강산 구연폭포 관광 및 야외 온천욕이었다.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버스창 밖으로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는 여러명의 북한 주민들이 보였다.
모두 초췌한 차림에 차량은 전혀 없고 자전거가 몇대 보일뿐이었다.
구연폭포로 향하는 길은 미인송 밭을 가로질러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금강산 아래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이 아직도 녹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었으며 등산로만이 사람들이 다녀서 눈이 다져져 있었다.

금강산의 설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금강산의 외금강 일부가 이럴진데.. 만물상이나 또 다른 곳의 금강산은 어떤 모습일까.
너무 궁금하다. 눈속으로 솓아 나온 바위가 온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금강산의 바위모습은 보는 이에 따라서 제각각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한다.
정말이었다.
도마뱀, 코끼리, 사람, 매 등의 모습을 한 바위들이 있었다.
이런 곳이 왜 북한에 있을까 아쉬움도 있었지만 천연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금강산이 오히려 북한에 있는 것이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다만 여기 저기 눈에 잘띠는 큰 바위에 새겨진 북한의 표어와 김일성 치적비 등이 눈에 거슬렸다.
산행을 끝내고 점심식사를 한 후 온정리 야외온천욕을 하였다.
머리위는 영상 4~5도인데 신기하게도 물은 따뜻하다.
일반 온천에서 느끼는 것외에 또 다른 것이 있었다.
봉래호에 돌아와서 저녁식사와 함께 배가 남쪽을 향해 출항하였다.
이제 언제나 또 다시 올지 모르는 금강산... 아니 영원히 못 올지도 모른다.
앞으로 내게 두고 두고 생각날 금강산이었다.

셋째날 (2월 28일) :

아침 7시경에 동해항에 도착하였다.
일출을 보려고 하였으나 안개가 낀 탓인지 해는 보이지 않았다.
동해항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북측의 회색콘크리트 건물과는 다르게 온갖 색으로 단장되어 있는 건물들이 아름다웠다.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우리의 체제가 나은 것 같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이렇게 남측과 북측의 생활방식에 차별화를 가져왔다.
어떤 체제이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진정 잘 사는 것이겠지만 북측의 생활모습을 보고 안쓰러운 것을 어쩔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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