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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산악관 고찰

삼포친구 2009. 2. 6.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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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산악관 고찰

-오악과 진산을 중심으로-

한국교육가족산우회 회장 이형석

 

. 들 머 리

 

한국은 국토의 약 2/3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나, 높은 산이 적고, 평균고도는 482m로, 아시아의 평균고도인 960m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산을 신성시하여 십이종산(十二宗山), 오악(五岳), 4대 명산(名山) 등을 정하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특히 지역에 따라 진산(鎭山)을 정해 고을에서 춘추로 제사를 지내고, 높은 산에는 백(白), 불(佛), 천(天), 황(皇), 왕(王), 용(龍), 금강(金剛) 같은 글자를 택하여 산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또 신격화된 산이나 산에 사는 신을 산신령(山神靈)이라 부르는데, 노인이나 호랑이로 인식된다. 이 때 호랑이는 산신령의 심부름꾼이나 탈것으로 배정될 때가 많다. 산신은 풍요나 여성의 원리보다 남성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산치성(山致誠)이나 산신제에서는 태양신에 접근하려는 높은 곳, 곧 산마루 제단을 통해 음덕에 감사하고 제화초복(際禍招福)을 기원한다. 또 산의 절벽이나 큰 바위에 생남하기를 기원하는데, 이는 자연신에 대한 민속적 신앙이며, 자연 숭앙의 한 형태이다.

산은 취락 형성의 터전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하여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형이 부락의 적지로 인식되어 왔으며 산골짜기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골→고을'로 의미가 담겨 있다. 또 고을의 어원은 고구려의 땅이름 표기인 홀(忽)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견해도 있다.

본 연구에서는 우리 나라와 중국의 오악과 진산을 중심으로 조사 정리하여 한국인의 산악관을 여러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Ⅱ. 오악(五岳·五嶽)사상

 

우리 나라에는 삼신(三神) 사상에서의 산악신앙을 비롯, 오악사상, 진산에 제사하는 풍습이 있다.

중국 고대의 제왕들은 오악을 여러 신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믿고, 오악에서 봉선(封禪)과 제사 등의 성대한 의식을 거행했다.

'오악(五嶽)'이란 말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 BC 156∼BC87) 때 처음 등장했으며, 당나라 현종(玄宗)은 5악을 왕(王)으로 봉했다. 송(宋)의 진종(眞宗)은 제(帝)로 봉했고, 명(明)의 태조(太祖)는 5악을 높여 신(神)으로 삼았다.

(1) 삼국시대의 오악

우리 나라의 최고(最古)의 사서인 <삼국사기>제32 잡지 제1 제사편 '제37대 선덕왕에 이르러는 사직단을 세웠으며, 또 그 사전(祀典)에 나타난 것이다. 국내의 산천 뿐이요, 천신(天神), 지신(地神)에는 미치지 아니했다' 하고, 또 천자(天子)는 천(天,神) 지(地,祇)와 천하의 명산대천을 제사하되, 제후는 사직과 자기 영역내에 있는 명산 대천만을 제사한다'고 하였으며, 제사를 지내는 삼산(三山)과 오악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 대사(大祀) - 삼산(三山)

나력(奈歷) ; 경주의 낭산(狼山)

골화(骨火) ; 영천 남동의 금강산

혈례(穴禮) ; 청도의 오례산

▷ 중사(中祀) -

(가) 오악(五岳)

동악 - 토함산(吐含山)

서악 - 계룡산(鷄龍山)

남악 - 지리산(地理山)

북악 - 태백산(太伯山)

중악 - 부악(父岳 ; 팔공산)

(나) 4진(四鎭),

(다) 사해(四海),

(라) 4독(四 )

(마) 기타(其他) 속리산, 청해진 등

▷ 소사(小祀) ;

상악(霜岳 ; 고성), 설악(雪岳 ; 간성), 화악(花岳 ; 가평),감악(紺岳 ; 파주), 부아악(負兒岳 ; 북한산), 월나악(월奈岳 ; 영암), 무진악(武珍岳 ; 광주), 서다산(西多山 ; 장수), 월형산(월兄山 ; 청풍), 도서성(道西城 ; 진천), 동노악(冬老岳 ; 무주), 죽지(竹旨 ; 영주), 웅지(熊只 ; 창원), 악발(岳髮 ; 울진), 우화(于火 ; 경주), 삼지(三岐 ; 청도), 훼황(卉黃 ; 경주), 고허(古墟호 ; 경주), 가아악(嘉阿岳 ; 보은), 파지곡원악(派只谷原岳) ; 미상), 비약악(非藥岳 ; 영일군), 가림성(加林城 ; 부여군), 가량악(加良岳 ; 진주), 서술(西述 ; 경주)

위에서 큰 제사인 대사는 중국에서 지내기 때문에 신라는 제후국으로 자처하여 국도 중심의 가장 주요한 신산삼소(神山三所)를 대사에 편입하였다.

삼산의 이름은 <삼국유사> 권1 '김유신조'에도 보이는데, 나림(奈林), 골화, 혈례(穴禮) 등 3소 호국지신(護國之神)이라 하였다.

이는 즉 국토의 수호신 산으로 석일(昔일) 삼한 부락국가시대의 소도(蘇塗; 神色)의 유풍인 듯하며 동시에 후일 고려시대의 삼소(三蘇 ; 좌소, 우소, 북소)와도 마찬가지로 추정된다.

한 부락이나 국가의 수호신은 대개 산악을 본거지로 하여 숭봉(崇奉)되므로 수호신과 산과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려의 삼소는 개성을 중심으로 하여 주위의 3개의 신산을 지정하였고, 삼한시대의 소도 역시 부락의 신산 혹은 신산밑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도는 솟터(소터)의 대음(對音)으로, 제사지역 전체를 포함한 의미의 말로 볼 것이며, 삼소의 소(蘇)도 소도의 소와 같은 말로 우리말의 '수리, 솔, 솟'(高. 上, 神, 山의 뜻)의 차음자로 <삼국유사>권 二 ' 남북여조'에 '군중 유삼산(郡中有三山), 왈일산(曰일山), 오산(吳山), 부산(浮山) 국가 전성시 각유신인(神人), 거기상(居其上) 비상왕래(飛相往來) 조석불절(朝夕不絶)이라 하였다.

이는 백제의 제전(祭典)에 든 3산의 이름을 전하는 귀중한 사료로 세산은 수도였던 부여 주위의 수호신산으로 추정된다.

또 같은 책에 '고구려는 항상 3월 3일에 낙랑의 구릉에 모여 사냥하고 돼지, 사슴을 잡아서 하늘과 산천(山川)에 제사한다'고 기록되었으며, <고기(古記)>에 '온조왕은 2월에 단(壇)을 베풀고 천지에 제사 드렸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2) 고려, 조선시대의 오악

고려시대는 오악이나 산에 대한 기록이 지극히 적고 뚜렷하지 않다.

<고려사, 권제54, '지제편'에 '고려 명종(明宗, 1131∼1202) 11년 4월, 신유일에 능묘와 악(岳-나라의 동서남북 중앙의 명산), 독(瀆-나라의 동서남북의 큰 강둑) 및 여러 신사에 비를 빌었다고 기록되었으나, 구체적인 산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세종 때에 집현전 학자인 양성지(梁誠之, 1415∼1482)는 국토의 악(嶽), 진(鎭), 해(海), 독(瀆)과 명산대천에 대한 국가의 치제(致祭) 대상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신라시대부터 오악 숭배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도 산, 바다, 하천에 치제가 있었다.

조선 개국 이후에는 가역의 확대와 정치 세력의 변동에 대응하여 산, 바다, 뚝이 정비-개편되어 오례(五禮) 가운데 길례(吉禮)로 정립되었는데, 태종-세종대에 4악, 3해, 7뚝을 중사(中祀)에 편입시키고, 25개의 명산, 대천을 소사(小祀)에 편제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비하면 대상이 늘어나고 비교적 정비되었으나 고려적 잔재를 모두 청산하지 못하고 미급하였다.

양성지는 이러한 한계성을 극복, 조선적인 사전(祀典)으로 면목을 일신하려 하였는데, '일대(一代)가 일어남에는 일대의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5악, 5진, 4해, 8산의 새로운 사전 개편안을 제시했다. 이 중 옛것을 계승한 것이 17개이고, 나머지 7개 중 4개는 이제(移祭), 13개는 새로이 추가했다.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종전의 기전(祀典 ; 五禮 - 吉禮)

4악(四岳) ;중악 - 삼각산(한성)

서악 - 송악산(개성)

남악 - 지리산(남원)

북악 - 비백산(정평)

14명산 ; 치악산(강원도), 계룡산(충청도), 목멱산(서울남산), 죽령산, 우불산, 주흘산,

전주성황, 금성산, 오관산, 송림, 우이산, 감악산, 의관령, 영흥성황

3해(三海) ; 동해(양양), 동남해(나주),남서해(풍천)

7독(七瀆) ; 웅진(금강), 가야진(낙동강), 한강(경기도), 덕진(경기도), 평양강(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 양성지 개편안 (*는 새로 추가됨)

5악 : 삼각산(중악), 지리산(남악), 구월산*(서악), 금강산*(동악), 장백산(북악, 백두산)

8명산 ; 목멱산, 감악산, 관악산, 계룡산, 치악산, 의관령, 축령산, 오대산*

4해 ; 동해신 - 강릉, 남해신 -순천, 서해신 - 인천 원도, 북해신 - 갑산

4독 ; 동독 - 옹진(경기도), 남동 - 한강, 서독 -대동강, 북독 -두만강

양성지의 사전 개편안은 우선 사전(祀典)이 개성을 중심으로 설정한 것과는 다르게 서울을 중심으로 하였기 때문에 방위가 달라졌으며, 종전의 사전이 중남부의 명산대천에 치우쳤던 것을 탈피하여 전국 각지를 고르게 망라하였다. 즉, 산악으론 구월산, 장백산, 금강산, 태백산, 묘향산 등이 새로 추가되고, 하천은 낙동강, 섬진강이 새로 추가된 대신 압록강이 제외되었다.

종전의 4악, 14명산, 3해, 7독을 5악, 8명산, 4해, 4독 등으로 바꾼 것도 중국 옛 제도에 규정된 사전과 일치되는 것으로서, 그의 자주적인 의식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다.

또 양성지는 다섯 개의 진산(鎭山)-5진(鎭)을 국가의 수호진산으로 선정하였는데, 그 산이름은 다음과 같다.

중진- 백악산(한성부),

동진- 태백산(강원도)

서진- 송악산(경기도)

남진- 금성산(전라도)

북진- 묘향산(함길도)

(3) 서산대사의 사산평(四山評)과 원주 동악단

* 서산대사의 사산평

근세조선 선조 때의 이름난 스님인 서산대사는 우리 나라 4개의 명산을 평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겼다. 그는 산의 규모가 큰 것을 '장(壯)이라고 평하고 산의 모양이 수려함을 '수(秀)라고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 구월산-불장불수(不壯不秀)

▷ 지리산-장이불수(壯而不秀)

▷ 금강산-수이불장(秀而不壯)

▷ 묘향산-장이수(壯而秀)

즉, 구월산은 크지도 못하고 경치도 좋지 않고, 지리산은 규모는 크지만 모양이 뛰어나지 못하고, 단지 묘향산은 산의 규모도 크고 산의 모양도 수려해서 네 산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서산대사가 묘향산에서 수도하고 생활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평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원주의 동악단

치악산은 서쪽 기슭, 원주시 행구동에는 동악단(東岳檀)이 자리하고, 그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원주 시내에서 약 6km 지점에 위치한 국향사(國香寺)는 신라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한 절로, 본래는 보문암(普門庵)이란 조그마한 암자였다. 조선 2대 임금인 정종의 둘째딸 희희공주가 불치의 병을 앓다가 물 맑고 경치 좋은 이 곳에서 백일기도 요양 끝에 병이 낫자, 정종은 사찰을 크게 세우고 절 이름을 '국향사'라 고쳐 부르게 하고, 병이 완쾌된 것은 치악산 산신령이 보살펴 준 덕이라고 하여 동악단을 쌓도록 했다. 그리고 봄-가을로 호국대제인 동악제를 봉행하도록 했는데, 이 때 조정에서는 향과 제문을 내렸으며, 원주를 비롯한 횡성, 영월, 평창, 정선, 여주, 제천 등 7개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를 지냈다고 한다.

노송으로 울창하게 둘러싸인 동악단은 1982년, 국향사의 신도회에서 옛동악제를 부활시키고자 복원하였는데, 원주, 원성지역의 문화제 행사인 '치악문화제'를 개최할 때, 이 곳에서 봉제(奉祭)로 시행하고 있다.

 

Ⅲ. 고을의 진산(鎭山)

 

앞에서 살펴본 <삼국사기> 제사편에 '제후는 사직과 자기 영역내에 있는 명산 대천만을 제사한다'고 기록되었을 뿐 고을의 진산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옛날 온 나라 및 국도(國都)와 각 고을의 뒤에 있는 큰 산은 그 곳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산'을 뜻한다.

따라서 전국적인 규모에서는 오악이나 삼산 또는 명산을 포함하는 개념인 각 지역적 규모에서는 고을에 제일 높거나 명산을 주산으로 지정한 산을 지칭한다. 각 고을의 여러 명산 중에서 주산으로 지정된 진산은 춘추로, 그 고을에서 제사를 지낸다.

각 고을의 진산 기록은 1458년(단종2)에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일부 지역만 기록되었는데, 예거하면 다음과 같다.

▷ 광주목(廣州牧) ; 검단산(黔丹山) - 주 동쪽에 있는데, 주민들이 진산이라 칭한다.

▷ 과천현 ; 진산은 관악(冠嶽)이다.

▷ 안산현 ; 진산은 추암(鷲岩)이다.

그러나, 1486년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에는 각 고을의 진산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며, 경기지역 고을의 진산을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다.

▷ 한성부 - 삼각산(경성의 진산)

▷ 개성부 - 송악

▷ 광주목 - 검단산

▷ 여주목 - 북성산

▷ 이천도호부 - 설봉산

▷ 양지현 - 정수산

▷ 과천현 - 관악산

▷ 수원도호부 - 발점산

▷ 부평도호부 - 계양산

▷ 남양도호부 - 비봉산

▷ 인천도호부 - 소래산

▷ 안성군 - 비봉산

▷ 진위현 - 부산

▷ 양천현 - 성산

▷ 김포현 - 북성산

▷ 금천현 - 삼성산

▷ 양성현 - 천덕산

▷ 통진현 - 비아산

▷ 양주목 - 불곡산

▷ 판주목 - 성산

▷ 장단도호부 - 망해산

▷ 강화도호부 - 고려산

진산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고을은 고양, 양근, 지평. 용인, 영평, 포천, 적성, 교하, 가평, 풍덕, 삭녕, 마천, 연천, 교동 등 14개 고을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총 36개 고을 중에서 61%인 22개 고을에는 진산이 기록되어 있고, 39%인 14개 고을에는 진산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그러나 한 고을에 1개처 이상의 진산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Ⅳ. 마무리

 

우리 나라는 옛부터 산악을 숭배하고 경외하는 산악신앙이 있어 왔으며, 명산대천을 비롯 오악, 삼산, 진산을 지정하여 제사 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국가에선 나라의 도읍지를 중심으로 중앙과 동서남북에 명산을 선정하여 5악이라 칭하고,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이 오악은 국가의 영토 변천에 따라 바뀌어 왔다.

중국 한나라 때부터 시작된 오악사상은 우리 나라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오는 우리 민족의 산악관(山岳觀)이었다. 각 고을에서는 고을 안의 명산 중에서 주산(主山)을 선정하여 진산으로 삼고, 고을에서 춘추로 제향하였다.

각 고을의 진산이나 국가적인 오악에서 제사를 드리는 목적은 자연을 사랑하고 고을의 백성들이나 국민들에게 화(禍)를 제거하고 복(福)을 구하는 제화초복을 기원하는 한 의식이다. 그리고 위정자의 측면에서 보면 나라나 고을을 다스리는데 화(禍)가 일어나지 않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참여자의 일체감, 화합심을 일으키게 하는 방편일 수도 있다.

이러한 선조들의 산악관을 이어받아 산악에 대한 경외심과 산악을 아끼고 가꾸어 나가려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겠다. 이러한 생각과 훼손되지 않고 아름다운 산과 숲, 자연을 우리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하겠다.

(출처 : 한국땅이름학회 traveleven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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